이 조항이 말하는 것
이 글은 중견 전자부품 제조사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원을 예로 듭니다. 이 연구원은 센서 모듈의 발열을 줄이는 구조를 고안해 사내 시스템으로 직무발명 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회사는 이 발명을 승계할지 답을 주지 않습니다. 사내 직무발명 규정을 다시 읽어 보니 「회사는 신고된 발명의 승계 여부를 검토하여 결정하며, 결정이 있을 때까지 발명자는 해당 발명을 외부에 공개하거나 자기 명의로 출원하여서는 아니 됨」이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 조항은 두 가지를 정합니다. 하나는 승계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가 회사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결정이 나올 때까지 발명자의 공개와 출원을 막는다는 점입니다. 조항 문구에는 기한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사가 결정을 미루는 동안 발명자는 끝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읽힙니다. 이 글은 「결정이 있을 때까지」라는 말이 정말 기한 없이 이어지는지라는 질문 하나만 다룹니다. 보상액을 정하는 기준, 퇴사 뒤의 보상 청구, 출원하지 않고 노하우로 관리하는 발명의 보상 문제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이 조항을 읽을 때는 조항이 묶는 행위와 묶지 않는 행위를 먼저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조항이 금지하는 것은 외부 공개와 자기 명의 출원이며, 사내 보고나 회사가 요청한 보완 자료 제출은 금지 대상이 아닙니다. 사례의 연구원이 학회 발표 초록 제출이나 외부 기관과의 공동연구 협의를 앞두고 있다면, 그 일정이 외부 공개에 해당하는지가 실제로 문제 되는 지점입니다. 따라서 이 조항의 기한을 따지는 일은 발명자가 다음 일정을 언제 잡을 수 있는지를 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쉽게 풀어 보면
현행 직무발명 법령은 회사가 답을 미룰 수 있는 기간을 정해 두고 있습니다. 종업원은 직무발명을 완성하면 지체 없이 문서로 회사에 알려야 합니다. 회사는 그 통지를 받은 날부터 4개월 이내에 승계할지 여부를 문서로 종업원에게 알려야 합니다. 회사가 이 기간 안에 알리지 않으면 법령은 회사가 승계를 포기한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사내 규정에 기한이 적혀 있지 않더라도 회사의 결정 기간은 법령이 정한 이 기간의 제한을 받는다고 읽는 것이 법령의 구조에 맞습니다.
비밀유지 의무도 같은 구조입니다. 법령은 종업원에게 회사가 직무발명을 출원할 때까지 발명 내용의 비밀을 지킬 의무를 지웁니다. 다만 회사가 승계하지 않기로 확정된 경우에는 이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정합니다. 결국 조항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는 실제로는 회사가 승계한다고 알릴 때, 승계하지 않는다고 알릴 때, 또는 4개월이 지나 승계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될 때까지로 읽힙니다. 다만 사내 규정이 법령보다 종업원에게 불리하게 정한 부분이 어디까지 효력을 가지는지는 개별 사안에서 다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해석만 믿고 곧바로 공개나 출원에 나서기보다 아래 사항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법령은 또 미리 승계 계약이나 근무규정을 두지 않은 회사는 종업원의 의사와 다르게 승계를 주장할 수 없다고 정합니다. 사례의 회사처럼 규정에 승계 조항을 두고 있다면 회사는 기간 안에 승계 의사를 문서로 알리는 것만으로 권리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거꾸로 보면 회사가 권리를 원할 때에는 기간 안에 문서로 의사를 밝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규정에서 기한이 빠져 있다고 해서 회사의 결정 부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한이 지난 뒤 달라지는 것과 달라지지 않는 것
승계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되면 발명에 관한 권리는 발명자에게 남고, 발명자는 자기 명의로 특허 출원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이때 회사에 어떤 권리가 남는지는 회사가 어떤 경로로 승계하지 않게 되었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회사가 기간 안에 승계하지 않겠다고 문서로 알린 경우, 회사는 원칙적으로 통상실시권, 곧 그 발명을 회사 사업에 쓸 수 있는 독점적이지 않은 권리를 가집니다. 다만 중소기업이 아닌 회사가 미리 승계 계약이나 근무규정을 두지 않았다면 종업원의 동의 없이 통상실시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반면 회사가 기간 안에 아무것도 알리지 않아 승계 포기로 간주된 경우에는, 회사가 종업원의 동의 없이 통상실시권을 가질 수 없다고 법령이 따로 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은 사전 승계 조항이 있는 회사에도 적용됩니다.
세 갈래를 나란히 놓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 기간 안에 승계를 알린 경우: 권리는 회사로 넘어가고, 발명자는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를 가집니다. 비밀유지 의무는 회사가 출원할 때까지 이어집니다.
- 기간 안에 승계하지 않겠다고 알린 경우: 권리는 발명자에게 남고 비밀유지 의무는 풀립니다. 회사는 원칙적으로 통상실시권을 가지되, 위의 예외에 해당하면 종업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 아무 통지 없이 기간이 지난 경우: 승계 포기로 간주되어 권리는 발명자에게 남고 비밀유지 의무도 풀립니다. 회사는 종업원의 동의 없이 통상실시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공개에 관해서는 따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승계 포기가 확정되기 전에 학회 발표나 온라인 게시로 내용을 먼저 알리면 비밀유지 의무 위반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또 공개 자체로 발명의 신규성을 잃을 위험도 생깁니다. 공개한 날부터 12개월 이내에 출원하면서 공지예외를 주장하는 제도가 있지만, 요건과 절차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승계 포기가 확정된 뒤에도 공개보다 출원 검토를 먼저 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입니다.
발명자가 확인할 점
기한이 지났는지, 지났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기록으로 판단됩니다. 다음 목록을 차례로 준비해 두면 사내 협의와 이후 절차에 모두 쓸 수 있습니다.
- 신고 접수일 증빙: 4개월은 회사가 통지를 받은 날부터 계산되므로 사내 시스템의 접수 화면이나 접수 확인 메일을 보관합니다.
- 문서 신고 여부: 회의 중 구두 보고나 발표 자료 공유만으로는 신고 시점이 다툼이 될 수 있으므로 정식 신고서를 제출했는지 확인합니다.
- 공동발명자 여부: 여러 사람이 함께 완성한 발명은 공동으로 알려야 하므로 신고서에 공동발명자가 모두 올라 있는지 확인합니다.
- 회사 답변의 성격: 「검토 중입니다」라는 메일이 승계 의사를 알린 문서인지, 단순한 진행 안내인지 구분해 원문을 보관합니다.
- 사내 규정 원문과 개정 이력: 신고 당시 시행된 규정에 사전 승계 조항과 심의위원회 조항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 회사의 출원 여부: 특허정보검색서비스(KIPRIS)에서 발명자 이름과 회사 이름으로 공개된 출원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다만 출원은 원칙적으로 출원일부터 1년 6개월이 지나야 공개되므로, 검색되지 않는다고 해서 출원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 저작물 포함 여부: 설계 문서나 소스코드처럼 저작물에 해당하는 결과물은 직무발명이 아니라 업무상저작물 기준으로 따로 판단됩니다. 이에 관한 등록·분쟁조정 안내는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제공하는 자료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록을 채울 때는 날짜가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내 시스템의 제출일과 부서장 결재일, 지식재산 담당 부서의 접수일이 서로 다르게 찍혀 있다면 어느 날을 회사가 통지를 받은 날로 볼지가 다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는 한 날짜만 골라 두지 말고 각 날짜와 그 근거 화면을 함께 기록해 둡니다. 가장 늦은 날짜를 기준으로 계산해도 기간이 지났다면 판단은 그만큼 단순해집니다.
문제가 될 때의 절차
첫 단계는 사내에서 서면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신고 접수일과 법령상 통지 기간을 적고 승계 여부를 문서로 알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기간이 이미 지났다면 승계를 포기한 것으로 보아도 되는지, 회사가 통상실시권을 주장하는지도 함께 묻습니다. 회사의 회신은 날짜가 남는 형태로 보관합니다. 회사가 기간이 지난 뒤에 승계를 알려 오면 그 효력이 다툼이 될 수 있으므로, 그 문서도 따로 보관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요청 문서에는 감정적인 표현보다 확인이 필요한 사항을 항목별로 적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신고서 제목과 접수 경로, 지금까지 받은 회사 답변의 날짜, 발명자가 예정한 외부 일정이 있다면 그 일정의 성격을 함께 적어 둡니다. 회사가 승계하지 않기로 했다는 답을 주면서 통상실시권을 요청해 온다면, 통지가 기간 안에 이루어졌는지에 따라 동의가 필요한지가 달라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검토합니다. 이 단계에서 서둘러 자기 명의로 출원하면 회사와의 관계에서 권리 귀속 다툼이 커질 수 있으므로 회신을 먼저 받는 것이 순서입니다.
회사와 의견이 맞지 않으면 사내 심의 절차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법령은 직무발명인지 여부, 권리 승계, 보상 등에 관해 이견이 있을 때 종업원이 회사에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심의하도록 요구할 수 있게 정합니다. 심의 결과에도 동의하기 어려우면 외부 분쟁조정이나 소송을 검토하게 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자기 명의 출원, 공개 시점, 회사의 통상실시권 범위가 서로 얽히므로 변리사나 변호사와 상담한 뒤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이며, 구체적 사안의 판단은 신고 시점의 사내 규정과 회사가 보낸 문서에 따라 달라집니다.